저번 아타리 2600이후로 이번엔 가장 많은분들이 알고계실걸로 예상되는 패미콤에 대한 얘깁니다!!
패미콤은 모두 아시는데로(아마 아실거라고 믿음)닌텐도에서 개발한 8bit 게임기입니다.
1982년 아타리쇼크로인해 비디오게임시장이 30억달러에서 순식간에 1억달러로 급락한상황에
일본에서 발매된 패밀리컴퓨터(패미콤), 닌텐도는 원래 트럼프 카드나 완구류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완구중에도 집게손이라던지 몇가지 대박장난감이 나와서 꽤나 성공을 했는데 지하철에서 전자계산기를 가지고노는
한 '어른' 의 모습을보고 게임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발매한게 '게임&워치' 였는데 당시 일본에서 가격은 어린이들이 살 수 없을정도의 꽤나 부담되는가격으로
어른을 판매 대상으로 발매했다고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케이드게임을 한번 하려면 100엔을 내야했고 game&watch는 한번 사면 들고다니면서
계속 할수있기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당시는 카트리지 교환방식이 아닌 내장형으로 기기한개에 게임이 한개씩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개념이였고 사진에 보이는 십자패드(디지털패드)도 이때 닌텐도에서 개발하게됩니다.
지금 차세대기에도 아날로그스틱과 함께 모두 사용되고있는 키의 시초가 바로 닌텐도였습니다.
아날로그스틱처럼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손쪽을 보지않고도 위를누르면 아래가 올라와서
게임 화면만 집중할수있는 새로운 개념이였죠!! liquidus.oranc.co.kr
다른게임을 사고싶으면 기기를 한개 더사야하는 뭐 그런거였죠.. 게임&워치로(참고로 이름은 말그대로 게임이랑 시계가
된다고해서 게임&워치) 큰 성공을 거두고 1983년에는 패미콤을 발매합니다.
패미콤은 8bit 게임기로 오히려 당시 아타리이후 나온 가정용 텔레비전게임기들사이에서 성능이 뛰어난건
아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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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시기 |
상품명 |
메이커 |
CPU |
가격 |
‘81년 7월 |
카세트 비전 |
에폭사 |
4bit |
13,500엔 |
‘82년 6월 |
인텔레비전 |
반다이 |
16bit |
49,800엔 |
‘82년 10월 |
퓨타 |
토미 |
16bit |
59,800엔 |
‘82년 11월 |
게임 퍼스컴 |
타카라 |
8bit |
59,800엔 |
‘82년 11월 |
맥스머신 |
코모돌 |
8bit |
34,800엔 |
‘82년 11월 |
다이나비전 |
야마기와 |
8bit |
34,800엔 |
하지만 패미콤에는 재미있는 소프트가 대량 발매됐고 가격도 상당히 싸게 발매되어서 엄청나게 보급됐고
그야말로 패미콤의 전성기였습니다.
아타리는 당시에 아타리2600이후에 새로운 콘솔이 나오고 했기때문에 패미콤이 미국에 발매할때 200$ 이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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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한다면 고소하겠다고했지만 결국 패미콤은 198$인가에 발매를 했다는얘기를 들은적이 있는거같네요 흠!
▲닌텐도에 동킹콩과함께 Game&Watch때부터 대박소프트인 슈퍼마리오
패미콤이 아타리쇼크와 여러가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성공을 얻은 이유를 몇가지 얘기해보자면
우선 아타리2600의 후기에 대충 며칠만에 게임한개 만들어서 아타리 규격에 맞게만 발매하면 적당히
수익은 얻는다, 라는 생각으로 ET같은게임이 나오지 못하도록 서드파티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아타리2600은 그냥 기기에 맞게 카트리지에 아무나 게임을 만들면 팔수있는 체계여서
아무나 대충 게임을 만들면 어떤게임이든 판매가 가능했는데 그결과 결국 돈만 생각하고 대충만든게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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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되고 결국엔 그런게임만 넘쳐나서 사람들이 소프트를 사지 않게되는 결과를 낳게되고 최종적으로는
1982년 아타리쇼크의 큰 원인이 됐죠... 서드파티는 닌텐도와 계약을해서 라이센스를딴 회사만 소프트를
발매할수 있는 개념이였습니다, 닌텐도의 당시 계약 조건은
1. 게임의 내용에 대해 사전에 닌텐도의 심사를 받을 것
2. 소프트 제작수는 협의 하에, 연간 1~5개로 할 것
3. 소프트 생산은 닌텐도에 위탁하고, 미리 제조비를 지불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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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였습니다. 우선 1번으로인해 아무게임이나 발매를할수 없게했고 2번으로인해 단기간에 대충만들지않고
게임 한개를 제대로 만들게되었습니다. 3번으로 소프트는 적당량 생산해서 가격의 균형도 맞추게되었습니다.
이 서드파티의 개념은 지금의 차세대기(Wii, PS3, XBOX360)까지도 여전히 사용되고있죠
그 결과 패미콤에는 수백개가 넘는 인기 소프트가 생겨났고 이 상태에서 더이상 다른 콘솔은 팔릴수가 없었습니다.
'하드의 성능은 약간 딸리더라고 재미있는 소프트가 있는 게임기를 산다' 이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죠..
PS1 과 N64나 PS2와 NGC의경우를 봐도 하드의 성능보단 초반 한두개의 킬러타이틀과
꾸준한 소프트의 라인업이 판매에 가장 중요하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N64... NGC... 불쌍한 닌텐도였지만 포터블에서는 먼 옛날 GB(게임보이)부터 NDS까지도 선두를 지키고있고
최근엔 Wii의 초반 대박으로 이대로만 나간다면.. !!
그럼 다시 패미콤얘기로 돌아가서 'FAMILY BASIC ▼'
닌텐도는 당시에 성공에 힘입이서 주변기기를 꼽는 포트를 마련하고(패드는 탈착형이 아니였음)
다양한 주변기기를 개발했는데 그중 하나가 패밀리 베이직이였습니다. 이름을 보면 알수있듯이
TV에 연결해서 프로그램 코드를 작성하고 간단한 그림그리기나 프로그램을 작성해볼수있는 그런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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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패미콤의 극한의 메모리로 그다지 만들수있는게 없었고
이런 자체개발 저장매체까지 개발했지만 별도의 기기를 구매해야했기때문에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뭐 그냥 이런것도 있다.. 그런정도..?
그리고 패미콤은 미국에서도 NES라는 이름으로 발매를했는데 미국에선 아타리로인해 비디오게임기의
이미지가 매우 나빴기때문에 디자인도 바꾸고 해서 얼핏 패드만없으면 게임기라는생각이 들지 않을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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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래 동영상의 로봇 주변기기도 북미 런칭과 함께 발매해서 게임기보단 장난감 완구의 이미지로
시장을 공략했다고합니다.
닌텐도는 패미콤의 성공 이후에도 슈퍼패미콤(SFC)으로 안전하게 넘어가서 꽤나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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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를 누렸습니다.
아래 사진은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에서 닌텐도가 출전한 'Advanced Video System' 란
이름의 프로세서로, 전세계 비디오게이머들과 함께 해온 패미콤의 원조, 프로토타입 입니다.
패미콤 발매이전에 나온 프로토타입인데 무려 무선패드라는게 놀랍죠
정식으로 발매한 패미콤과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인데 닌텐도는 게임을 위한 기기로 전략을 세웠기때문에
패미콤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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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지금 제가 버리지 않고 가지고있는 닌텐도의 기기는 NDS뿐이지만(lite도아닌 9DS)
역시 게임으로만 봤을때 닌텐도는 창의력이 넘치고 도전정신이 뛰어나고(그래서 망한사례도 몇몇있지만)
최고의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우워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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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아주 혹시 아주아주아주 혹시나해서 하는말인데 닌텐도는 회사이름입니다.
NDSL이나 Wii를 닌텐도라고 부르는경우(심지어 몇몇 경품 광고에서까지!)가 있는데..
그건 플스를 소니라고부르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PS2를 사고서 '와~ 나 소니샀다!! 소니하러 우리집에 놀러와'
그런 이유에서 다음엔 닌텐도 회사를 집중적으로 파거나 메탈기어1,2때문이라도 (메탈기어 솔리드 아님)
MSX에 대해서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언제가될지는 알수 없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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